SERANG WORLD


'Serang,s Life'에 해당되는 글 215건

  1. 2008.03.28
    석달간의 질주. (4)
  2. 2008.03.24
    네개의 전시. 갤러리. 후배들... (6)
  3. 2008.03.14
    Serang World 스팸 폭격으로 이전 (4)
  4. 2008.02.26
    서설(瑞雪) - 눈덮인 삼청동. (7)
  5. 2008.02.16
    bataille님으로부터의 선물. (2)
  6. 2008.02.11
    숭례문, 그의 죽음을 헛되이 하지 말라! (10)
  7. 2008.02.04
    잘 만들고 싶지 않다. (21)
  8. 2008.01.27
    미련... (2)
  9. 2008.01.16
    세트장에서...
  10. 2008.01.14
    징크스. 습관, 또는 집중... (2)
  11. 2007.12.31
    Adieu 2007. (2)
  12. 2007.12.23
    세계 인형 대축제 전시 오픈! (8)
  13. 2007.12.11
    세남자의 남해 여행기 최종회 - 아, 해금강! (2)
  14. 2007.12.10
    세남자의 여행기 Part.4 해금강 1편
  15. 2007.11.26
    세 남자의 여행기 Part.3 - 해금강의 일출 (3)
  16. 2007.11.23
    reflection-02 (5)
  17. 2007.11.21
    발자국 도둑 다녀가시다 - 삼청동의 첫눈. (3)
  18. 2007.11.14
    삼청동의 가을. (2)
  19. 2007.11.02
    우주적인 풍경 (2)
  20. 2007.11.01
    11월.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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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초 의뢰로부터 장장 5개월여만에 결정이 난 프로젝트.
그동안 다섯번의 PT와 회의, 숱한 전화통화...
지난번 용평에서의 최종PT까지...
오늘 드디어 계약을 맺었다.
이제부터 앞으로 석달간은 그야말로 죽음의 질주와도 같은 정신없는 시간이 될 듯.

아울러 불과 10달이라는 짧았던 삼청동에서의 생활도 얼마남지 않게 될 것 같다.
너무나 편안하고 행복했던 삼청동을 떠나고 싶지 않지만, 이번 프로젝트의 작업 특성상 좀더 개방적인 공간이 필요해져서 작업실을 이전해야 하기 때문이다.

6월이 두렵고도 기다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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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M.11.00. 2X13갤러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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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담동 2X13갤러리에서 열린 황일동씨의 개인전.
내 바이크 랩터를 만든 맷블랙 개라지 D.Hwang과 동일 인물이자, 이제는 아트그룹 GARAT로 미술활동중.

PM.12.20. 아트선재센터 서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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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 작가들의 그룹전이 열리는 아트선재센터에서 한국현대미술의 경향을 만나게 됨.
소재집중적인 요즘 미술경향에 흥미를 잃게 만듦.
단, 북한 인민들의 고통이 엿보이는 손자수의 손맛만 기억에 남다.

PM.01.30. 몽인아트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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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동네인 삼청동 몽인아트센터의 입주작가 그룹전.
폴리와 수지를 이용한 작품들이 몇점 있었는데, 표현방식과 기법적인 면에서 재미있다. 정작 전시 보다는 콘크리트라는 재미없고 딱딱한 건축재료를 자연스럽게 사용한 건물의 디테일이 더 흥미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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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M.03.20. 대학로 홍익대학교 연건캠퍼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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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회 모형동호회 연합전 관람.
오래간만에 반가운 얼굴들을 만나고 사는 이야기, 한동안 듣지 못한 사람들의 소식을 듣게 됨. 프라모델 기법에 관한 지루한 이야기는 안해도 되서 편하다.

PM.11.50. 대학로 주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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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의를 나가고 있는 마포 한국컬러디자인전문학교의 피겨 디자인 수강생들과 피겨 아티스트 고준과 함께 술과 인형 이야기를 하다.
밖에는 비가 내리고 수강생들의 눈은 반짝거리고, 나는 점점 말이 많아 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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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래 제 블로그인 www.serang.co.kr 의 블로그에 며칠전 스팸 폭격이 있었습니다.
뭐 제 블로그뿐만 아니라 수많은 설치형 블로그와 티스토리등에도 피해를 입힌 무서운 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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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스팸때문에 블로그의 댓글과 방명록 글쓰기 기능에 이상이 생겼고, 이를 해결하려고 노력했지만 잘 작동이 안되서 결국 세랑월드의 백업용으로 존재하던 이곳 티스토리로 옮겨왔습니다.

조만간 복구하겠지만, 당분간 이곳 티스토리에서 제 블로그는 계속 유지될 예정이며, 아예 눌러앉을까도 생각중입니다.
제 원래 주소는 앞으로 별도의 홈페이지를 만들까 생각중이며, 세랑캐스트의 주소는 변하지 않았으니 그대로 이용하시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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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도 이게 이 겨울의 마지막 함박눈이 되겠구나 하는 생각을 했다.
간밤에 쉼없이 내린 눈은 새벽 여명 속에서 서서히 그 속살을 드러내고 있다.
두 치가 넘게 수북하게 쌓인 눈길을 맨발에 슬리퍼만 신고 "뽀드득~ 뽀득" 걸어 다닌다.
괜히 입꼬리가 올라간다. 

새해가 밝고 정월 대보름이 지난지도 얼마 안되었는데, 
부디 이 눈이 서설(瑞雪)이 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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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 덮인 삼청동의 풍경은 너무나도 평온하고 아름다운 모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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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직에 가까운 축대에서 떨어지지 않으려고 안간힘을 쓰며 매달려있는 눈송이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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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결(浪: 랑)치는 곳에도 눈이 내려 앉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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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랑월드를 통해서 참 많은 사람들과의 인연을 만들게 됩니다.
통신선을 타고 흐르는 이 미묘한 인연들은 종종 사람들을 상처받게 만들기도 하지만, 역시 아직까지는 마음이 따듯해지는 추억들을 더 많이 만들게 되는 것 같습니다.
예전에 이원 시인님께서 빗방울과 함께 선물 을 보내주시더니, 이한수님이 메탈 스티커를, 이번에는 bataille님께서 또 값진 선물을 보내주셨습니다.

음반회사에서 일을 하시는 bataille님께서 아름다운 음악들을 한가득 보내주셔서 밥을 먹지 않아도 배가 부른 느낌입니다.
이 아름다운 소리와 시간들을 선물해주신 bataille님께 무한감사를 드리며, 어찌 보답을 해야할지 모르겠네요.
행복한 하루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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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장면 하나에 마음이 무너져 내린다.
20여년전, 난생 처음 서울에 발을 디디며 서울역에 내린후 바로 보게 된 숭례문은 내게 '아, 여기가 바로 서울이구나!' 라는 감흥을 선사한 위대한 건축물이었다.
개인적으로 한국사 공부를 하며 한없이 초라한 우리나라의 문화재 관리에 분통이 치밀어 오르기도 했지만 그나마 이런 건물들이 남아 있는 것이 어디겠는가 하며 스스로 위안을 하고 내심 뿌듯해 하곤 했었다.
임란당시 일본에 의해 훼손되고, 병자년에는 불태워지며, 다시 일본에 의해 무차별로 파괴되는가 하면 개발이란 명목하에 마구잡이로 변질되어 버린 우리 문화재들중 그나마 그 원형을 유지한 몇 안되는 서울의 자랑이 바로 숭례문 아닌가.

태조께서 조선을 창건하며 세워진 도성의 정문이라 할 수 있는 남문인 숭례문은 지독히도 불운한 한국사의 아픔을 모두 겪으면서도 살아남은 진정 당당한 우리 서울의 상징이었고 그래서 '나라의 가장 보배로운 물건' 제1호가 될 수 있었다.
숭례문은 단순한 건물이 아니라 아래의 사진에서 보듯 600여년간 백성들과 삶을 같이 해온 '벗'이었다.
숭례문 주위에는 백성들의 삶이 펼쳐지는 상가거리가 있었고, 그것이 곧 지금의 남대문 시장이다.
100년 전만해도 숭례문은 백성들 삶의 터전이자 한낮의 찌는 태양을 막아주는 시원한 그늘을 제공해주며 늘 그곳에 서있는 보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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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래 사진은 인터넷에서 숭례문으로 나와있지만 앞에 반원형의 옹성구조가 남아있는 것으로 보아 아마도 흥인지문(동대문)일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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숭례문은 임진왜란, 병자호란같은 대란에서 살아 남았고, 잔혹한 일제에 의해 헐려버린 돈의문(서대문)과 같은 참사도 피할 수 있었으며 한국전쟁 당시 우뢰와같은 폭격 속에서도 무너지지 않고 살아남았었다.
그런 숭례문이 불타버린 것이다.(아래 사진은 한국전쟁중의 숭례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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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것은 함경도 백두산에서, 어떤 것은 바다의 비바람을 견뎌내며 자랐을 낙락장송에 제를 올리고 그것을 베어 육로로, 때로는 물길로 올라와 껍질을 켜내고 먹줄 한번 튕겨 대패질을 하던 대목장의 손길이 고스란히 뭍어있던 600년 전통의 건물이 단 몇시간만에 잿더미로 변해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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숭례문은 단순히 불에 타고 무너져 내린 것이 아니다.
불길이 그의 속살을 태우며 나는 흰 연기는 제발 살려달라고 외치는 절규였고, 날름거리는 불꽃속의 선명한 단청은 그의 마지막 자존심 처럼 보였다.
마침내 그 지붕이 무너질때, 나는 600년의 역사를 고스란히 지녀온 그의 죽음을 보았다.
더이상 그의 명예와 혼백을 훼손치 말아야 한다.

감히 그의 앞에 무릎을 꿇고 우리의 잘못을 뉘우치고 머리를 숙여야 한다.
그리고 다시 앞으로 최소 600년, 아니 수천년을 당당히 버티고 서있을 수 있는 새로운 몸을 그에게 주어야만 600년의 역사가 살아숨쉬는 그의 혼백이 다시 그곳에 깃들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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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등학교 연극제에서.

돌이켜보면 내가 미술을 하게되고 모형을 만드는 사람이 되는데에는 초등학교 시절 미술선생님의 한마디가 결정적이었던 것 같다.
방학숙제로 만들었던, 찰흙을 빚어 만든 파도를 뚫고 솟구쳐 오르는 돌고래를 보신 미술선생님이 '세랑이는 커서 화가나 조각가가 되면 좋겠구나'라는 그 한마디가 내 인생에 첫번째 전환점을 찍어준 것이다.

이전까지도 무언가를 끄적이거나 만드는 것을 좋아하긴 했지만 그것은 누구에게 보여주기 위해서라거나 잘 만들고자하는 노력따윈 전혀 들어있지 않은 것이었다.
그저 머릿속에 떠오른 이미지를 표현하고자 하는 일차원적인 욕구에 의해 만든 것이었고 내가 남들보다 그림을 잘 그리는지 못그리는지에 대한 개념 조차도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진흙장난과 낙서하기를 좋아했던 나에게 '미술'이란 두 글자를 각인시켜준 그날의 기억은 그리 오래가지 않았고 중고등학교를 거치며 나의 목표이자 꿈은 연극과 영화를 향하고 있었다. 연기와 영상은 떠오르는 이미지에 가득차 있던 한 소년의 미래에 대한 뚜렷한 희망이자 오롯한 외길처럼 보였다.



고3 여름방학, 또한번의 전환점이 찾아오게 된다.
연극영화과 입시를 준비하던 내게 미련이 남아있음을 알게 된 것이다.
'미술'이란 두글자는 잊고 있었지만 여전히 만화그리기와 프라모델 만들기는 내게 있어서 가장 즐거운 휴식이자 상상력을 펼칠 수 있는 또 하나의 세계였다.
미술선생님의 권유로 나간 사생대회에서 입상하게된 것을 계기로 견학을 가게 된 한 미술대학의 서양화 실기실에 들어서는 순간, 난 새로운 전환점에 발을 들여놓고 있음을 알게 되었다.

결코 밝지 않은, 어찌보면 다소 음침하게 느껴지는 실내에는 담배연기가 자욱했고 세로로 길게 난 창을 통해 빛이 새어들고 있었다.
코를 톡 쏘는 테레핀유의 송진향과 키를 훌쩍 넘겨 벽면을 가득채운 약 200호 정도의 그림이 앞에 서 있었다.
그날의 분위기는 완벽하게 기억하지만 그 그림이 무엇이었는지는 불분명한데, 그게 어찌되었던간에 입시를 불과 두달반 정도 남긴 내 현실을 잊게 만들 정도로 강력한 인상을 남긴 경험이었고 그 날 이후 난 미대입시를 준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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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1학년 실기실에서 내 습작들과 함께.


요즘은 어떤지 모르겠지만, 서양화 전공의 미대 1학년생인 나는 한 학기 동안 또 석고상을 그려야했다.
석고상 그리기는 분명 기초데셍력을 기르기 위한 과정이었겠지만, 늦깎이 미대입시를 준비하느라 남들의 세배, 네배의 양으로 지겹게 해댄 석고덩어리 그리기는 정말 재미없었다.
너무나 지겨웠고 고지식한 교수진의 방식에 대한 맹랑한 내 반항심은 석고상에 보이는 모든 명암을 반대로 바꿔그리기로 나타났다.
어두운 곳은 밝게 그리고 밝은 곳은 어둡게 처리하는, 마치 사진의 네거티브 필름에 찍힌 것 처럼 말이다.
교수님께 불려가 혼쭐이 났지만 난 나대로 내 주장도 함께 말씀을 드렸다.

"잘 그리기는 쉽습니다. 잠자코 보이는 그대로 그리는 것은 더욱 쉽습니다. 전 쉽게 잘 그리는 것 말고 좋은 작품을 그려내고 싶어서 미술대학에 왔습니다."

깐깐하고 무섭기로 소문났던 그 교수님의 표정이 일순 누그러지며 난 더이상 혼나지 않아도 되었고 덤으로 그 수업을 마칠 즈음 좋은 성적까지 받게 되었다.


1990년 취미가 창간 이후, 난 십수년을 한결같이 모형을 만들어왔다.
모형잡지사의 필진으로 시작해서 직원으로, 그리고 편집장을 거치며 건담, 캐릭터 인형, 전차, 비행기, 함선, 밀리터리/ 히스토릭 인형을 모두 섭렵했고 단품, 비넷, 디오라마를 가리지 않고 만들어댔다.
어떤 장르이건 머릿속에 좋은 이미지가 떠오르기만 하면 그것을 만드는 시간은 새로운 도전이자 즐거운 행위였다.
미친듯이 모형을 만들었고 많을때는 한달에 1/48 비행기 한대에 1/16 빅스케일 전차와 인형까지 해치우곤 해서 이대영 전 편집장님께서는 날보고 모형을 풀빵찍듯 만들어 댄다면서 '모형공장'이라고 부를 정도였으니 말이다.
내게 있어서 모형제작은 단순히 그 키트를 만드는 것이 아니라 머릿속에 떠오르는 이미지를 표현해보는 일이었고, 그것이 미치도록 즐겁고 재미있어서 시간이 가는줄도 몰랐다.
'그때'가 오기 전까지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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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지사 시절 모형색칠중

괴로왔다. 
모형을 만드는 시간이, 모형잡지를 만드는 시간이 지옥과도 같았다.
몸도 마음도 모두 지쳐 다 내팽겨치고 어딘가로 숨어들고 싶을때 조차도 내 손은 쉬지않고 에폭시 퍼티 반죽을 주무르고 있거나 사포질을, 또는 붓을 잡고 인형의 얼굴을 색칠하고 있었다. 
10년을 넘게 직업으로 모형을 만들고 나니 머리속으로는 딴생각을 하면서도 내 손은 마치 정교한 기계와도 같이 탱크에 워싱을 하고 블랜딩을 하고 있었다.
내가 만들고 싶은 모형이나 이미지를 만들기 보다는 독자들이 보고싶어하는, 또는 독자들이 좋아하는 것을 만들어야 한다는 강박관념이 내 몸과 생각을 지배하고 있었고 오로지 완성만을 위한 한없이 지루한 과정이 남아있을 뿐이었다. 
매달 마감을 앞두고 착착 완성작을 뽑아내고 그걸 사진으로 찍어 기사를 만드는데 익숙해진 내 몸은 더이상 내것이 아니었고, 이미 나는 모형을 만드는 기계가 되어있었다. 진짜 '모형공장'이 되어 버린 것이다.


엎친데 덮친격으로 만성 목디스크로 인한 왼팔 마비증세까지 와버렸다.
팔에 힘이 빠지고 바늘로 쑤시는 듯한 통증에 왼손으로 모형을 들고 있을 수 조차 없어서 탱크를 책상에 내려놓은채 엎드리다시피하고 오른손만으로 만들고 색칠을 해야했다. 
그러는 와중에도 잡지 마감시간은 칼 같이 다가오고 있었다.
몇번이고 마음을 다잡으며 한달 한달을 버텨가던중 바로 그 날이 찾아왓다.
내가 더이상 나만의 생각과 이미지를 담은 '작품'이 아닌 '완성작'을 뽑아내는 기계가 되어가고 있음을 통렬히 알아차린 그 날 이후로 난 더이상 이 일을 계속해나갈 힘을 잃고 말았다.
물론 경제적인 문제라던가 건강문제같은 표면적이고 현실적인 영향을 무시할 수는 없었지만, 더 근본적인 원인은 '잘 만드는 사람이 되고 싶지 않다'는 것이었다.


그후로 지난 2년간 난 모형에 손도 대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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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형이 싫어서가 아니라 더이상 습관처럼 모형을 만들고 싶지 않아서였다.
십수년을 지속한 습관은 무서운 것이어서 종종 미치도록 모형을 만들고 싶을때도 있었지만, 차라리 나는 모형이 아닌 옷을 만들어 입거나 그림을 그렸고, 더불어 바이크를 만들어 타고 여행을 다녔다.
의도적으로 모형을 멀리했고, 대신에 미술전시나 영화, 책을 보는 일이 많아졌으며 그저 혼자 바이크를 타고 이름모를 시골길을 달렸다.
모르는 사람들은 팔자좋게 유람을 다닌다고 생각할지도 모르겠지만, 그것은 십수년동안 나를 지배해오던 것들과 싸우는 일 이었고, 그것들을 털어버리는데 온 힘을 다해야만 했다.
마감이 지나면 모형잡지라는 이름으로 팔리게 될 '138페이지의 백지'에 무언가를 채워넣으려는 생각으로 꽉 차서 아무것도 할 수 없었던 내 머리속에 조금씩 새로운 생각들과 경험들이 그 자리를 대신하며 겨우겨우 나는 다시 모형 공구상자를 열 수 있었다. 
 
모형을 잘 만들기는 쉽다.
물론 모형을 잘 만들기위해서는 오랜시간과 경험, 그리고 각종 테크닉을 섭렵하고 그것을 온전한 자기 것으로 만들기위해 부단한 노력이 필요하지만, 그것은 말 그대로 '노력'을 하기만 하면 되는 문제다.
잘 만든다는 것은 '감성'보다는 '기능'의 문제이며 기능은 타고나기도 하지만 대부분 시간과 노력에 의해 만들어지는 법이다.
그래서 잘 만들기는 쉽지만 '좋은 작품'을 만들기는 어렵다.

나는 잘 만든 작품보다는 좋은 작품을 만들어내고 싶다.
신기하고 정교하며 놀라운 작품보다는 마음을 움직일 수 있는 작품을 만들어내고 싶다.
그래서 내 작품을 보며 사람들이 '어떤 재료로 만들었나요? 도료는 어떤 것에 무슨 색을 쓴건가요?'라고 묻기보다는 '어떻게 이렇게 슬픈 인형을 만드셨나요?', '보고있으면 마음이 따듯해지는 기분이에요.'라고 말할 수 있는 작품을 만들고 싶다.
그것이 반드시 모형으로 불려지지 않아도 좋고 스케일이 맞지 않아도 좋으며 꼭 잘만들고 잘 색칠되어보이지 않더라도, 그저 내 머리속에 있는 이미지와 가슴속의 감성을 온전히 담아내는 그릇이면 좋겠다.
거창하게 스스로 '예술'이라는 타이틀을 걸지 않아도 그것으로 인해 사람들이 내 감성과 이미지를 공유할 수 있다면 그게 바로 좋은 작품, 진정한 예술이 될 것이다.

모형제작이란 것을 직업으로 삼은지 올해로 18년째, 난 또다시 새로운 전환점을 찍고 있다. 
당돌하고 거칠었으며 미숙했지만, 순수하고 열정적이었으며 좋은 작품을 그려내고 싶다고 생각했던 20살 어느 여름날 그때 처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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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나는 다시 붓을 잡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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짧은 겨울 해는 드리워지는 어둠을 조금이라도 피하고자 안간힘을 쓴다.

그 해를 바라보는 나뭇잎 또한 벽에 제 몸을 붙이고 매달린다.

둘다 아직은 미련이 남아있기 때문이다.

2008.01.27. PM 05:25. 삼청동 뒷골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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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벼락에 흩뿌려진 물감들처럼 자유로운 사고와 삶이 주어지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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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한 삼일간 면도를 안했더니 아랫턱이 깔깔하게 수염이 자랐다.
언제부터인지는 기억이 나질 않지만, 난 몰두하는 일을 할때나 작업중에는 면도를 하지 않는 습관이 생겼다.
원래 수염이 많고 빨리 자라는 편이라 하루만 면도를 하지 않아도 까칠한 수염이 덥수룩해지고, 특히 수염이 강하고 많아서 전기 면도기로는 깨끗하게 밀리지 않아 항상 손면도를 해야하는 탓에 더욱 귀찮은 일이기도 하다.

그때문인지 높은 집중력이 필요한 일, 요컨데 예전에 잡지 마감기간이라던가 모형제작을 할때, 그림을 그리거나 작품구상을 할때는 면도를 하지 않게 되었다.
산도적같이 덥수룩해진 수염은 곧 내가 뭔가에 한창 몰두하는 중이라는 일종의 'Sign'이며 그 진척도 역시 수염의 길이로 가늠할 수 있다.
삼손의 머리털 처럼 수염을 기른다고 해서 힘이 더 세지거나 일이 잘되는 것은 아니지만, 하여간 내게 있어서 수염은 곧 '두뇌의 작동상태와 정비례'한다고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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졸...


립...


다...


금요일 세팅.

토요일 모형 마무리 작업과 전시진행.

밤새워 내 자화상(미니미)용 커스터 의상 제작한뒤 
일요일 전시장 지키러 감.

나는 지금 전사처리중.
꼴까닥~
(나머지 사진과 자세한 내용은 내일로 미루고 지금은 잠을 자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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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전시 부스 공간과 액션피겨 메인전시 작품이자 신작인 닥터 하우스와 바이크 랩터, 
그리고 나의 미니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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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로는 3일간의 짧은 여행이었지만 이리저리 돌아다닌 곳이 많고 천천히 포스팅을 하다보니 어느덧 3주전의 일을 이제야 마무리 하게 되었습니다.
여행기의 마지막은 바다의 금강산이라 불리우는 '해금강'에서 마무리 합니다.
거제도의 제일 아랫쪽에 위치한 해금강은 남해에서도 절경중의 절경을 자랑하는 곳입니다.
인근 산을 올라 조망한 해금강은 그야말로 한폭의 그림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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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구에서 유람선을 타고 해금강을 둘러보기 위해 출발합니다.
걸죽한 입담을 자랑하는 선장 아저씨의 넉살을 들으며 해금강의 요모조모를 뜯어 보게 됩니다.
솔직히 아저씨 아주머니 관광객들을 위한 이 선장 아저씨의 너스레는 저희 일행의 취향은 결코 아니었지만, 간혹 피식~하고 새어나오는 웃음덕에 그냥 넘어 갈 수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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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날 하루 종일 운전하느라 짜증이 하늘을 뚫었던 S군과 시종일관 유유자적, 희희낙락, 만만디의 정수를 보여준 J씨 마저도 이 풍경 앞에서는 탄성을 내지릅니다.
정말 보지 않았다면 후회하고 말았을 놀라운 경치입니다.

거센 바닷바람에 맞서가며 살아온 나무는 덩치가 크지 않습니다.
전해내려오는 이야기로는 이 기암의 꼭대기에 있는 소나무가 수천년이 되었다고 하는데, 실제 사실 여부는 그리 중요하지 않습니다.
천년송의 풍모만큼은 완벽했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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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장의 슬근슬근 관광객들의 마음을 얼러가며 해금강의 백미인 십자굴을 통과하려 합니다.
배 한척이 간신히 들어가는, 해금강을 열십자로 가로지르는 이 수로를 비집고 들어가는 광경은 그야말로 묘기 대행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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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면서도 믿기지 않고 보고나면 또 보고 싶어지는, 먼 바다를 바라보고 있는 선비의 형상을 한 이 촛대바위 처럼 마냥 그 자리에 앉아 바라보고픈 풍경... 바로 해금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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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형 제작기로 인해 잠시 쉬었던 '세남자의 남해 여행기' 그 네번째입니다.
거제도에서의 밤이 지나고 일출을 보기위해 바닷가에서 사진을 찍고 있을때 일행이었던 S씨가 찍은 도촬사진(?)입니다.
그날의 느낌이 잘 살아있는 사진이죠.

해가 뜨고 나서 차를 타고 해금강으로 향합니다.
숙소에서 약 40분 정도 가야 하는데, 가는 도중에 보이는 아름다운 남해 풍경에 자꾸 가던 길을 멈추고 이렇게 사진기를 꺼낼 수 밖에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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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금강 근처 언덕에 오르자 갈대가 무성합니다.
바닷바람에 이리저리 몸을 흔들며 춤을 추는 갈대가 마음을 푸근하게 해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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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엔 식당같은데를 가면 남태평양 바다 사진들이 달력으로 많이 걸려있었죠.
보면서 감탄하고 저런 바다를 한번 봤으면 좋겠다며 꿈을 꾸곤 했는데, 남해는 그에 못지 않습니다.
동해는 파란 빛이 강한 바다이고 황해가 특유의 누런 빛깔이라면 남해는 단연 비취빛의 보석같은 바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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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도가 떠미는대로 몸을 맡긴채 수만년을 구르며 갈고 닦은 몸매를 뽐내는 돌멩이들은 그 어떤 보석보다도 아름다운 모습과 빛깔을 띄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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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의 풍화와 파도에 의한 침식이 만들어낸 이 장엄한 아름다움은 비록 그 크기는 작지만 그랜드캐년에 못지않은 감동을 선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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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 겨울연가의 라스트 씬 촬영지로 유명한 '외도'입니다.
사유지인 관계로 배삯외에도 입장료를 받아 입맛이 떫게 느껴지긴 합니다만 한번쯤 들려봐도 좋은 곳입니다.
주인 내외분들이 무인도였던 이 섬을 사들여 정성스럽게 가꿔서 환상적인 정원으로 만들어 놓았죠.
개인적으로는 너무나 인공적인 느낌이 강해서 기대했던 것에 비해 실망도 했지만, 수십년에 걸쳐 자신의 꿈을 현실로 만들어 놓은 부부의 열정과 노력에는 감탄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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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적으로 외도에서 가장 마음에 들었던 곳은 아름다운 정원이나 예쁜 건물이 아닌, 외도 관광코스의 마지막에 나타나는 이 압도적인 경치입니다.
개발을 하지 않은채 놔둔 이 부속 섬과 한없이 푸른 바다가 주는 감흥은 그 어떤 화려한 꽃보다도 더욱 큰 감동을 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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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제도는 남해에서도 무척이나 큰 섬입니다.
애초 무계획으로 떠난 여행인지라 처음에는 거제도가 얼마나 큰 섬인지 모르고 왔다가 깜짝 놀라기도 했죠. 거제도의 명소인 해금강 근처에 숙소를 잡았었고, 잠을 자다가 새벽에 일출을 보러 바닷가로 나섰습니다. 어둑하던 하늘이 잠시 밝아지나 싶더니 여명이 비추기 시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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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을 클릭하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주변을 도는 여객선의 선원들이 하루를 시작하기 위해 나서는 모습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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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에 구름이 붉은 기운을 머금기 시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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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수평선 아랫쪽에서 붉은 덩어리가 등장합니다.
그 강렬한 기운을 암시하듯 바로 윗쪽의 구름이 활활 타오르기 시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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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것을 집어 삼킬듯 붉게 타는 태양이 구름을 뚫고 모습을 드러냅니다.
사진을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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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렬한 태양과 구름, 그리고 푸른 하늘과 바다가 만나 황홀함의 극치를 맛보게 합니다.
10여분간의 짧은 시간이지만 일출의 감동은 시커먼 사내 세명의 가슴을 뭉클하게 만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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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남자의 여행기는 아직도 계속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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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론 낯설기만한,

그래서 새삼스럽고, 당혹스럽지만...

거부할 수 없는 모습.

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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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랬습니다.
제가 있는 삼청동에, 도둑님이 다녀가셨습니다.
어찌나 실력이 좋은지 사르락~ 사르락~
들릴듯 말듯한 소리만 내곤 쥐도새도 모르게 다녀갑니다.

다행입니다.
그 자그마한 소리를 들어버려서요.
살포시 문을 열고 나가니 차가운 솜덩어리들이 얼굴을 적십니다.

한발짝 한발짝 도둑님을 찾아 나섭니다.
어찌나 민첩한지 방금전에 찍은 내 발자국을 이내 차가운 솜털로 덮어버립니다.
마음이 슬픈 도둑님이 밤새 눈꽃을 피우곤 도망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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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청동에서 가을은 달력속의 날짜가 아니라 자연스러운 풍경이다.
북악을 울긋불긋하게 물들이는 나무들은 물론이고 가로수인 은행나무는 살짜기 바람이라도 불라치면 어김없이 하늘을 날아다니며 거리의 사람들을 설레게 한다.
오래된 기와지붕과 울긋불긋한 단풍이 너무나 정겹게 어우러진다.

아울러 집집마다 조그맣게 가꾸어 놓은 화분이나 화단의 꽃들도 가을 정취를 더하는 재치꾸러기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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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작업실 근처인 정독 도서관 축대에는 평소 많은 이들이 오며가며 담벽을 긁어 그들의 흔적을 남겨놓곤 해서 익숙하고도 정겨운 풍경을 만든다.
그런데 요며칠 사이 이 담벼락에 액자가 설치되었다.
여러 사람들의 아기자기한 사연과 마음이 담긴 낙서에 포인트를 심는 액자 하나만으로 이 낙서들은 모두 미술품이자 그림이 되어버린다.
거리미술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만들어진 이 멋진 전시는 평소 이곳을 오가며 생각에 그쳤던 내 평소 구상과 바램을 실천에 옮겨주었다는 점에서 전시관계자들에게 박수를 보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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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혹 우리는 우리가 사는 세상을 너무 쉽게 보곤 한다.
아직까진 제대로 들어가 볼 수도 없는 바다는 둘째로 치더라도, 저 하늘은 우리가 도저히 상상치 못하는 형태와 표정과 반응을 보여주곤 한다.
20시간이 넘는 긴 비행을 자다 깨다하며 반죽음이 되었을때 이 광경을 보았는데, 순간 비행중이라는 생각도 잊고 저 폭신한 구름위를 걷고싶다는 충동이 맹렬하게 일었다.
날짜변경선 부근이라서 앞쪽은 푸른 하늘이 펼쳐진 대낮이지만, 뒷쪽은 캄캄한 밤인 우주적인 풍경...
2003년 9월의 기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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