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w are you doing?
My original shipping schedule is already gone, i really apology about that.
Now i suffering from a pain of neck(disc) problem.
In last one month, really bad condition on my body and i can't working my job.
Of course i am undergoing neck treatment, and getting batter then really bad.
I am working everyday for my customer, but my working speed is slowdown then my original condition.
So shipping schedule is still delayed, but i'll be absolutely finished my job for everyone and me.
Van Gogh will be shipped at mid August, if not i'll refund who want.
Yi Soon-Shin also little delayed, will be shipped on early~mid September.
Thank you very much and i am sorry about my bad health condition.
Best Regards,
Serang.
아시는 분들은 아시겠지만 저는 원래 매우 심한 목디스크 질환을 앓고 있었습니다.
재활을 통해 일상생활에는 지장이 없었고 작업도 열심히했는데, 지난 수년간~올해 초반까지 너무 열심히 달려온 탓인지 최근 몇달간 목디스크가 재발해 정상적인 컨디션으로 일을 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몸에 무리가 가지 않도록 컨디션을 조절하다보니 원래 제 작업속도에 비해 매우 느리게 작업이 이뤄지고 있습니다.
때문에 애초에 약속드린 배송시기가 좀 지연될 것 같습니다.
이미 작년 작품이지만 수차례의 전시와 작업실 이전, 이후 개인적인 제 사정등으로 어느덧 일년 가까이 되어가는 반 고흐의 배송지연은 뭐라 드릴 말씀이 없습니다.
다행히도 요 몇주간 컨디션을 조절한 덕분에 다시 작업을 지속하고 있으므로 곧 일을 마무리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반 고흐 피겨는 8월 중반까지는 모두 배송이 완료될 예정이며, 만일 이때까지도 제가 마무리하지 못하게 된다면 원하시는 경우 전액 환불해 드리겠습니다.
이순신 피겨는 원래 배송예정이었던 7월 말에서 8월말~9월 초중순으로 약 한달 가량 배송이 지연될 예정입니다.
작품을 구매해 주신 분들의 넓은 양해를 부탁드립니다.
제 개인적인 문제들로 배송이 늦어진 점 다시 한번 사과드리며, 오랜 기다림에 보답하도록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김세랑 드림.
고통의 연속이다.
끝을 알 수 없을 것 같은 늪에서 허우적대고 허망한 세상의 굴레를 벗어던지기 위해 싸우고 또 싸워도 이놈의 고깃덩이는 자꾸만 내 발길을 잡아 끈다.
2006년 이후 또한번 내 목을 조르고 있는 이 굴레와 껍데기를 벗어 던지기위해 몸부림 치다가 껍데기 중의 하나를 날려버렸다.
거울보며 바리깡으로 벅벅 밀고 면도기로 싸악~싹 밀어버리고 며칠...
완전삭발을 한 것은 군입대때 이후 처음인 것 같다.
두상도 못생겼고 머리를 밀면 내 인상이 매우 살벌하다는 것을 잘 알고 있지만 이건 남들을 위한 것이 아니므로 아웃오브안중.
고통을 벗어나기 위해서는 그 바닥까지 빠져들어야 한다는 것을 이젠 잘 알기에 오늘도 난 심신을 모두 망나니의 칼춤앞에 내던지고 있다.
오늘은 충무공 이순신 장군의 탄신 468주년 기념일이었습니다.
원래 오늘부터 제 이순신 장군 피겨의 주문제작 예약을 받으려했었는데, 곰곰히 생각해보니 왠지 충무공 탄신일을 너무 제 개인적인 필요에 의해 이용하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어서 오늘은 그냥 난중일기를 다시 읽으며 공의 삶과 정신을 새겨보는 것으로 조용히 보냈습니다.
이순신 장군 피겨의 프레오더 예약은 오는 5월 1일에 시작될 예정입니다.
당초 워낙에 높은 제작비용과 제작상의 난이도로 인해 원작만 만들고 추가로 콜렉터분들을 위한 주문제작은 불가능할꺼라 생각했습니다.
특히 애초 구상단계에서부터도 토이마켓은 고려하지 않고 오로지 '내가 만들 수 있는데까지 한번 만들어보자'라며 개인작품으로 진행했기 때문에 하나의 미술작품으로 거래되는 것이 아닌 이상에는 별 의미가 없다는 생각도 했습니다.
그러나 저 이상으로 이순신 장군님을 존경하고 이 작품을 소장하기를 간절하게 원하시는 분들이 계셔서 한정기간, 한정수량, 특별한 가격으로 주문을 받기로 결정했습니다.
특별가격이라고 해도 만일 토이마켓의 커스텀 피겨 가격과 비교하면 매우 비싸게 느낄 것입니다만, 미술품이라고 생각하신다면 오히려 매우 싼 가격이 될 것입니다.
기존에 제 작품세계를 응원하고 성원해주신 콜렉터분들을 위한 특별주문 접수이며, 이 기간이 지나면 작품의 가격은 2배 이상으로 책정될 예정입니다.
보다 자세한 내용과 본격적인 작품소개는 5월 1일 부터 올라갈 예정입니다.
감사합니다.
세랑월드는 현재 이사중...
원래 호프집, 중국집이었던 상가건물인 관계로 현관문이 없어서 문짝 만들어 다는 중.
힘도 들고 빨리 마치고 싶어서 주문하려 알아보니 문짝 하나에 무려 50만원!
그래서 그냥 목재 조금 사다가 만들고 있다.
무언가 만들줄 안다는 것이 이럴때 도움이 되기는 하지만 역시 몸이 고되고 혼자 일하려니 시간도 많이 걸린다.
홍대 세랑월드 시절, 제자인 태준이, 주원이, 유걸이, 재현이가 십시일반해 선물해준 간판.
홍대에서는 달 곳이 마땅치 않아서 못달고 보관만 하고 있었는데, 이번에 달아주었다.
이젠 어엿한 작가들이 된 제자들에게 감사를.
워낙에 짐도 많고 정리해야할 것이 많은 내 작업실 특성상 너무나도 길었던 이사도 이제 거의 마무리 되어간다.
어릴때 시골 외가댁에서 유년기를 보냈던 내게 선명하게 남아있는 기억중 하나가 있다.
아침에 염소들을 몰고 나가 삽교천 방죽에 풀을 먹이고 난 방죽에 누워 하늘의 구름들을 보며 온갖 상상을 하곤 했다.
'이건 윗집 탱자네 수탉이 지붕에 올라간 모양, 저건 새벽녘 툇마루위에서 날 노려보던 고양이 얼굴...'
몸에도 안좋은 담배를 아직 끊지 못하고 피우고 있는 나 스스로에게 왜 아직도 담배를 피우고 있나 물어보니, 내가 이렇게 답한다.
"기침을 하고 가슴이 아파와도 뭉게뭉게 피어오르는 담배연기가 보여주는 몽환적이고 변화무쌍한 이미지들 때문" 이라고.
조선시대 양반과 선비들은 모두 탐욕에 찌들고 아랫사람을 업신여기는 기득권층으로만 그려지는 것이 오늘날의 이미지이지만, 조선시대 양반과 선비들이 모두 권력지향적이고 탐욕스러우며 꽉막힌 사람이었던 것은 결코 아니다.
자고로 선비들이 갖추어야 할 덕목에는 '학문'은 기본이요 시, 서, 화를 갖추어야 하며 이른바 '풍류'라고 불리우는 음주가무를 즐길 줄 알아야 제대로 공부하고 제대로 인생을 즐길 줄 아는 사람으로 평가되었다.
조선시대 학문이란 무엇인가?
천자문, 만자문은 겨우 글을 깨우치는 것이요, 방대한 필수과목들을 섭렵한 후에는 저명한 서적들을 통하여 기본적인 철학과 문학을 깨우쳐야만 했다.
오늘날로 치면 이게 겨우 고등학교나 마친거라 할까?
시는 인문학적이고 철학적인 통찰력을 기르는 단계였고 서(서예)는 글씨를 통해 정신수양과 예술적인 감각을, 화는 그림을 통해 인간과 자연, 미적인 감각을 기르도록 요구받았다.
술을 마시고 노래를 부르며 춤을 추는 것은 자칫 학문만을 파며 외곬수에 편협함으로 빠지기 쉬운 선비들에게 넉넉한 인간성과 예인으로써의 자질과 안목을 기르게 하는 방법이었다.
덕분에 조선시대 양반들은 예술에 대한 안목이 매우 높았으며, 집안 사당에는 선조들의 초상화를 모시고 당대 이름있는 서예가나 화가들의 그림 한점을 받기위해 거액을 투자하는데 망설임이 없었다.
실제로 조선시대의 양반들은 우리가 생각하는, 요즘 사극에 묘사되는 모습과는 매우 달랐다.
그들은 대부분 귀를 뚫어 귀고리를 했으며 금보다 귀하게 여긴 은은한 옥으로 갓 장식을 만들어 달았고 운학문양이 은은하게 새겨진 도포에 삼색 명주실로 곱게 짠 세조대를 찼으며, 이상의 세계를 묘사한 그림이 그려진 부채에 자수정 선글라스를 끼고 곱디고운 꽃신을 신고 다녔다.
중국처럼 지나치게 화려하진 않았으나 일본처럼 경박하지 않은, 은은하고 미니멀한 감각적인 멋을 부릴 줄 아는 사람들이었던 것이다.
아무리 몰락하고 가난한 집안의 선비라 할지라도 이런 기본적인 인문학적, 예술적 소양을 기르는데에는 예외가 없었다.
심지어 찢어지게 가난한 백정들의 집에도 민화 한두점이 걸려있는 것이 기본이었던 우리나라의 예술적 전통이, 그래서 구한말에 프랑스가 강화도를 침범했을때 거지들이나 살 것 같은 꼴같지 않은 집들 조차 책이 쌓여있고 그림들이 걸려있는 것을 보고 깜짝 놀랐다지 않은가?
그런 우리나라가 오늘날 이모양 이꼴이 된 것은 잔혹했던 일제의 문화말살 정책, 그리고 한국전쟁 이후 오로지 먹고 사는 문제에만 급급하게 만든 정치, 모든 국민들의 노동력과 재산이 결국은 몇몇 재벌들에게 다 귀속되게 만든 사회의 구조적인 문제가 그 원흉이다.
비가 오는 버스안…
터널속으로 들어가자 창이 울어버린다.
뭘 잘못했니?
무얼…
iPhone 에서 작성된 글입니다.
새로 들어온 식구중 하나인 황금국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