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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세랑. 나는 이분을 만나면서 내가 그간에 느꼈던 모든 상념들과 파편적이라 있는 지식들, 경험들을 모두 놓아야만 했다. 언젠가 황지우 시인이 김용택 시인을 평했던 말이 떠오른다. “세상에는 종류의 시인이 있다. 단지 시를 쓰기 때문에 시인인 그런 사람이 있고, 하나는 시를 쓰지 않고서는 도저히 되는 사람이기에 시인이라 불리는 그런 사람이 있다.” 시인의 평은 1994 나에게 작가는 무엇인가에 대한 기초적인 이미지를 제공했다.

김세랑. 작가는 후자에 속한다. 지위도 명예도 세속의 모든 자기 위안도 그의 작품 세계를 덮지 못한다. 작가는 스스로 그렇게 작업을 뿐이다. 그렇게 태어났기 때문이다. 작가도 1990년대에 여느 다른 사람들처럼 평범하게 미술대학을 다녔다. 작가는 이때 근거 없고 표현할 방법 없이 커다란 난관에 부딪혔다고 한다. 작가는 미술작업에 대한 테크닉도 아니요 재료연구도 아니고 단지 예술의 본연을 배우고 싶었다. 그러나 제도권의 천편일률적인 습속(習俗)만으로는 예술의 본연으로부터 가까워지기는커녕 요원해지기만 했다. 작가는 못할 우여곡절들이 점철되어 학교라는 제도와 차츰 멀어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사회에 진출한 이후에 작가는 크나큰 결단을 내려야만 했다. 현대미술은 개념이 전혀 정립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작가로부터 개념을 요구한다. 그러나 정작 대가(大家) 평범한 작가의 차이는 누가 제도라는 연결그물에 보다 많이 포섭되느냐 아니냐의 차이일 뿐이었다. 작가는 연결그물을 쌓는 시간을 아끼는 대신 자기가 가장 좋아하는 것에 모든 것을 걸겠다고 다짐했다.

언젠가 백남준 작가는예술은 텃세다. 그것은 보편이 아니다.” 표명했다. 작가는 좋은 사람을 좋아한다. 작가는 텃세로 자기 자리를 유지하고 차지한 유명인이 아니라 인류에게 심적 위안과 힘을 보편인을 사랑한 것이다. 음악가, 선의의 정치가, 화가 작가의 영혼과 마음을 빼앗은 사람들에 대해서 연구한다. 주위 사람들은 작가의 전관(全觀, total view) 지식에 대해서 놀라지 않는 사람이 없을 정도라고 한다. 역사, 철학, 사회학, 인류학, 문학, 영화사, 미술사, 과학사, 복식사, 공학, 해부학, 기계장비, 인체측정학 온갖 분야의 배경지식에 두루 손길이 뻗쳐있다.

작가의 궁극적 미학은 시대의 복원과 인물의 권리해방에 있다. 지미 핸드릭스, 베토벤, 빈센트 고흐, 윈스턴 처칠은 단순한 인물이 아니다. 이들은 모두 특정 시대의 의미와 키워드를 짊어지고 있는 무게의 아이콘인 것이다. 짊진 자들을 복원해서 작가가 얻으려는 취지는 무엇인가? 과거에 대한 깊은 연구와 천착은 오히려 우리가 사는 시대의 의미에 대해서 깊게 생각할 있는 계기를 형성해주는 총체적 해석일 있다. 베네딕트 크로체는역사는 모두 동시대적이다.” 명언을 남겼다. 지금을 사는 현재에 대해서 우리는 해석을 내릴 없다. 다만 과거를 현재의 관점으로 해석하는 행위로부터 현재의 의미에 대해서 음미할 있을 뿐이다. 김세랑 세계의 요체는 비주얼로 구성한 역사 해석이라고 정의할 있다.

주지와 같이 김세랑이라는 이름 석자는 피규어를 다루는 현대미술가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작가가 어째서 피규어라는 형식과 장르를 선택했는지 묻지 않을 없다. 작가는 (Ron Mueck)이나 마우리지오 카텔란(Maurizio Cattelan)처럼 스펙터클한 형상을 충분히 제작할 수도 있었다. 일례로 작가는 일본 반다이사() 대규모 건담을 제작한 경력을 가지고 있다. 어째서 피규어인 것인가? 그것은 에드워드 벌로우가 이야기한 심적 거리(psychical distance) 극단적으로 줄이기 위해서이다. 작가와 대상 사이의 감정이입(Einfühlung) 극화되는 수단으로서 작가는 피규어를 택한 것이다. 작품을 제대로 감상하기 위해서 관객은 작품 앞에 극단적으로 다가와야 한다는 것이다. 하나 작가는 시대에 대해서 유럽 액셔니스트(actionist) 드보르(Guy Debord)스펙터클의 사회(Society of the Spectacle)’라는 명제에 대해서 깊은 명찰을 한다. 작가는 스펙터클과 스펙테이터라는 이분법의 일방적 통행을 통해서 평등의 기회가 상실된 것이 현대의 의미라고 재고한다. 이러한 강압적 이분법을 미연에 봉쇄하는 힘은 미적 대상에 정치(精緻) 아름다움, 덱스터리티(dexterity) 구가하는 방법밖에 없다는 결론에 도달한다. 덱스터리티를 완성하기 위해서 작가는 즐거운 작업과 괴로운 노동 사이에서 무수히 진동한다. 모든 형상의 완성은 반죽의 터치에서 비롯된 것이며 채색 역시 스프레이 공정이 아닌 순수 붓질(brush stroke) 의한 것이다. 의상 작업은 특정 시대에 국한 되었던 옷감을 복원해서 바느질한 작업이다. 그러나 이러한 노동집약적 노고의 의미는 일부분에 지나지 않는다. 더욱 중요한 의미가 내재되어있기 때문이다.

작가는 작업을 역사적 인물(historical figure) 극단적으로 가깝게 다가간다. 지미 핸드릭스를 예로 들면, 핸드릭스가 활동했던 60년대의 흑인 인권상황, 군부대의 생활상, 60년대의 복식사, 핸드릭스의 가정사, 당시의 무대미술, 악기에 대한 모든 연구를 감행하며, 하루 24시간을 핸드릭스의 음악에 파묻혀서 심적 거리가 최소화된 상태로 몰입된 가운데 비로소 작업을 개진시킨다. , 작가는 자기가 가장 좋아하는 역사적 인물을 현실에 체현시켜 동시대 사람들로 하여금 심적 거리 없이 다가설 있는 교류의 (communicative field) 마련하려는 사명을 지녔다. 이러한 필드를 어째서 마련하는 것인가? 역사는 현실세계의 반면교사이자 거울이기 때문이다. 그것은 어쩌면 김세랑 작가가 선택한, 지금 여기의 진정한 의미를 알기 위한 어쩔 없는 숙명의 여행일지도 모른다.


이진명, 큐레이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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