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김세랑입니다.
담담하게 즉흥적으로 쓴 글에 이렇게 성원을 보내주셔서 감사합니다.
어찌어찌하다보니 인형제작을 배우고 싶어하는 학생이나 수강생들에게 강의를 하면서, 그리고 예전에 같이 활동하던 원형사들을 만나서, 새로운 강자로 떠오르는 후배 원형사들을 만나며 항상 아쉬운 것이 우리나라 모형계에는 흔히 말하는 '족보'가 서있지 않다는 것이 아쉬웠습니다.
거칠게 말해 '족보'라 표현했지만, 이것은 비록 짧지만 우리나라 모형계, 그중에서도 피겨 모델링의 간략한 역사라고 말 할 수 있습니다.
자신이 어떤 줄기에서 나와 꽃이되고 열매가 되었는지를 모른다면 그 꽃이 아무리 화려하고 열매가 달다해도 '빛 좋은 개살구'가 될 뿐입니다.
비록 거칠고 제 개인적인 경험치에서 풀어내는 글이지만 이 글이 인형을 사랑하고 즐기는 분들께 하나의 참고가 될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개념정리2 - 초간단 인형의 역사>
인류역사 최초의 인형은 자연재료인 진흙으로 만든 소조상으로 시작된 것으로 봅니다.
서양미술사에서 소조상의 시초로 보는 구석기 시대의 '묄렌도르프의 비너스'나 동양의 무덤에 부장되는 '토용'으로부터 인형의 역사는 시작되지요.
이후 인류가 직조(천을 만드는 것)기술을 터득한뒤 헝겁인형이 만들어지고 금속도구가 발달하며 목각인형, 조각상등이 나옵니다.
중세시대 이후에는 비약적으로 인형이 발달하는데, 도자기 제작기법으로 구워만든 비스크 인형이나 마리오네트등이 발달하고 이후 구체관절인형도 등장하죠.
동양에서는 주로 목각인형이 주류를 이룹니다.
근대에는 정밀도가 높아진 실사풍의 '스테츄'인 주석인형(납 합금으로 만들어진 금속인형)이 인기를 끕니다.(서양 동화인 '장난감 인형'에 나오는 나폴레옹 시대 군인 인형이 대표적이죠)
현대에 들어서 12인치 액션피겨의 원형은 '바비 인형'과 'G.I. Joe'시리즈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PVC와 플라스틱이라는 소재가 등장하며 이루어진 변화죠.
공장에서 금형으로 대량생산이 이뤄지는 점도 피겨의 대중화에 큰 기여를 합니다.
1990년대 후반, 홍콩의 드래곤사(군인 인형)와 미국의 블루박스 토이(군인 인형), 사이드쇼(영화, 만화등 캐릭터 인형)등의 회사들이 앞다투어 이전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진화한 12인치 크기의 관절을 가진 액션피겨들을 쏟아내며 피겨 붐을 일으켰고, 결국 오늘날의 12인치 피겨 시장을 만들어내게 됩니다.
<제2장 - 태동기: 피겨 삼총사>
본격적으로 '피겨 삼총사'에 대한 이야기를 하기 전에 제 이야기를 잠시 하고 넘어가야 겠네요.
전 당시 대전에 살고 있었습니다.
예나 지금이나 서울은 지방도시들과는 경제, 문화적으로 큰 격차가 있죠.
서울에서는 1990년대 초에 이미 모형 전문점이란 것도 있었고 값비싼 외제 수입 모형재료나 제품들도 전시되고 판매가 되고 있었지만 지방에서는 이런 것들에 대한 정보가 일체 없었습니다.
저 역시 학교앞 문방구에서 구입한 프라모델들을 조립하며 상자에 나와있는 제작예 사진과 설명서의 내용이 가장 큰 모형정보 채널이었으며, 당시 학생잡지인 소년중앙, 새소년, 학생과학등에 간혹 등장하는 프라모델 관련 기사(대부분 일본 모형잡지에서 무단 발췌한 카피기사)는 바이블이나 마찬가지였습니다.
인형제작에 관한 정보는 전무해서 사실상 완전한 독학으로 인형을 만들 수 밖에 없었습니다.
처음에는 찰흙으로 만들어 포스터 컬러로 색칠한뒤 니스를 발라 마감해서 작품을 만들었고, 훗날 지점토를 이용해 만들다가 폴리퍼티를 깎아 만들고 요즘 나오는 모형용과는 비교도 안되는 초록색 공업용 에폭시 퍼티(수도관 누수 응급처치용)를 사용해 힘겹게 인형을 만드는데에 이르렀죠.
낮에는 미술대학 학생으로 수업을 듣고, 밤에는 모형을 만들며 잡지 필진 생활, 방학이면 서울 잡지사로 올라가 준직원으로 현장에서 일을 하는 이중, 삼중생활을 하며 전 급속도로 재료들과 모형기법들에 눈을 뜨게 됩니다.
운이 좋은 것인지 운명적이었던건지 별 생각없이 '남들은 모형을 도대체 어떻게 만들까?'하는 호기심에 동네 문방구 앞에 붙어있던 프라모델 콘테스트 공지 포스터를 보고 혼자서 만들던 작품을 들고 콘테스트에 출품한 것이 덜컥 수상을 하게되며 시작된 모형잡지 생활은 관련정보에 굶주려있던 제게 별천지나 다름없었죠.
잡지사라는 특성상 소장되어 있던 모형관련 해외 자료 서적과 잡지등을 미친듯이 읽고 공부하고 실습해보며 꿈을 키워나갑니다.
"전공인 미술과 모형기술을 접목시켜서 언젠가 누구나 인정하는 좋은 작품을 만드는 아티스트가 되리라."
제1장에서 언급한바와 같이 대중앞에 공표된 제가 만든 제1호 인형은 SF장르의 인형이었습니다.
당시 가장 인기가 있는 인형장르는 일본 만화와 애니메이션에 등장하는 캐릭터 피겨, 그중에서도 미소녀 피겨였죠.
그러나 일본만화 형식의 미소녀 인형들은 전혀 제 취향이 아니었습니다.
독자들이 원해서 어쩔 수 없이 만들거나 훗날 먹고살기 위해 의뢰작으로 들어온 것을 거절하지 못하고 만든 몇번을 제외하고는 전 캐릭터 인형에는 관심이 없었습니다.(이건 좋고 나쁘고의 문제가 아니라 그냥 제 취향의 차이일 뿐입니다. 오해없으시길.)
제 관심의 대상은 밀리터리 인형과 전통 역사속의 인물들로 옮겨가고 있었습니다.
제가 잡지를 통해 계속 작품을 발표하고 이를 통해 독자들과 소통을 하고있던 무렵, 또다른 인형 작가들의 존재를 알게됩니다.
당시 붐이었던 캐릭터 인형시장을 노리고 사업을 시작한 국내 신생 개라지 인형 브랜드 'Sol Model'에서 오리지널 아이템 개발을 위해 채용한 원형사 '조일형'씨가 선수들 사이에서 화제가 됩니다.
주로 캐릭터 인형을 만들지만 실사풍의 조형에도 상당한 재능을 보이는 선수다라는 소문이었는데, 정작 그 사람을 안다거나 본 사람은 거의 없었습니다.
'베일에 쌓인 얼굴없는 고수' 같은 이미지였죠.
또다른 한명, 어린 친구인데 조형능력이 상당해서 프라모델 메이커인 아카데미의 인형을 전담해서 만드는 직원이 있다는 이야기도 듣게 됩니다.
그러고보니 자체개발 인형 프라모델이 없던 아카데미에서 탱크나 비행기에 슬금슬금 못보던 인형이 포함되기 시작하던 무렵입니다.
그 친구의 이름은 '박기갑'이라 합니다.
제가 있던 사당동(호비스트 출판사)과 솔 모형이 있던 마포, 아카데미 과학이 있던 수유리를 연결하는 트라이앵글이 울리기 시작합니다.
'만나봐야 겠다...' 제 머리속에 든 생각입니다.
두 사람에게 무작정 전화를 하고 신분을 밝힌뒤 어찌어찌 이야기를 나누고 대학로의 한 카페에서 회합(?)을 가지기로 합니다.
강호의 무림고수 세명이 한데 모이는 이 역사적인 자리.
갑자기 먹구름이 몰려들더니 땅이 진동하고 하늘이 울지는... 않았습니다!
그런건 무협지에서나 나오지~ 하하핫!
조일형씨, 부스스한 더벅머리에 순진하고 맘씨좋은 옆집 형 같아 보이는 얼굴, 말이 거의 없지만 입을 열면 수줍고 짧은 단문으로 마무리되는... 그리고 그 크고 길며 투박한 손은 도저히 저 손에서 곱디고운 미소녀 얼굴이 만들어진다는 것을 믿기 어려운 모습입니다.
박기갑씨, 저보다 연배는 아래인데 거의 삭발에 가깝게 짧게 자른 머리와 검은 피부, 주렁주렁 몸에 두른 액세서리들이 인형을 만든다기 보다는 홍대에서 기타를 치며 노래를 부를 것 같은 인상입니다.
잠시 어색한 순간이 지나가고 슬쩍 서로의 스펙과 내공을 견주는 은근한 힘겨루기가 이어집니다.
사용하는 재료는 뭔지, 좋아하는 작품이나 작가는 누군지, 만들고 싶은건 뭔지등...
어색함은 잠깐이고 반가움은 큽니다.
마이너한 장르를 좋아한다는 공통점으로 이내 셋은 봉인된 혀를 쉴새없이 내두르며 이야기를 토해냅니다.
시간이 어떻게 흘렀는지 모를 정도로 정신없이 인형 이야기와 경험담들을 토해놓은뒤 세사람은 마치 유비, 관우, 장비가 도원결의를 하듯 강력한 삼각편대를 이루기로 뜻을 함께 합니다.
매주 한번씩은 함께 만나서 이야기를 나누고 재료와 기법을 공유하고 작품을 만들어 기사로 발표하며 우리가 좋아하는 인형을 대중화 시켜보자.
실제로 우리는 하루가 멀다하고 수시로 만났고, 에폭시 퍼티와 스컬피라는 새로운 재료의 사용법과 특성을 공유하며 외국에서 발표된 새로운 인형작품에 대해 토론했습니다.
그리고 그 내용들은 고스란히 잡지에 다양한 기사로 발표되었죠.
스컬피라는 신재료를 사용해 환타지 장르의 창작인형 작품을 만들기 시작한 조일형씨,
자유로운 영혼의 소유자이지만 작업할때는 성격이 꼼꼼해서 다작은 못하지만 한 작품 나올때마다 수준 높은 작품을 선보인 박기갑군,
그리고 잡지사 전문필진으로 매달 한작품 이상씩은 반드시 작품을 만들어야 해서 한달에 탱크 하나, 비행기 한대, 인형 하나를 색칠해 매달 기사로 발표한 나.
이후로 수년간 말 그대로 미친듯이 작품을 만들고 공부하고 배우며 즐기던 시간입니다.
그리고 서로가 함께 하면서도 각자의 개성은 변치않아 서로 각자의 관심과 방향을 잡아 자신만의 세계를 만들어간 시기이기도 하죠.
조일형씨는 캐릭터 인형 전문 원형사로, 박기갑씨는 잠시 다녔던 아카데미 과학을 나와서 프리랜서 원형사로, 저는 잡지사 필진을 하며 점차 역사적인 소재의 인물들을 인형으로 재현하는 작업을 하는 식으로 발전하게 된겁니다.
당시 이 세 사람의 기사는 탱크와 비행기외에는 관심이 없었거나 인형에 관심이 있더라도 관련정보가 부족해 답답하던 이들에게 신선한 충격과 자극이 되었습니다.
수면아래 가라앉아 있던 인형을 좋아하거나 만들고 싶어 하던 이들이 호흡을 시작해서 물위로 거품이 뽀글뽀글 올라오기 시작합니다.
처음에는 인형기사를 실으면 '아까운 한정된 지면에 인형따위를 싣지 말고 탱크나 비행기 기사를 하나라도 더 내보내라!'라고 하던 독자들도 분위기가 살짝 누그러져 인형의 매력에 조금씩 눈을 떠가는 분위기입니다.
바야흐로 한국 모형계에서 완벽한 비주류였던 인형분야가 르네상스를 맞이하기 직전의 상황입니다.
-계속-
세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