겸재 정선은 한때 왜곡되어 중국의 문물과 문화를 높게 우러르던 사대주의를 실력으로 제압하고 자신만의 화풍을 이뤄냈을 뿐만 아니라 동양화단에 일대 센세이셔널한 새로운 화풍을 만들어 낸 인물이다.
흔히 교과서적으로 외워대는 '진경산수의 대가'라는 수식어가 얼마나 대단한 것인지 현대를 사는 우리들은 선뜻 짐작하기 어려울 정도다.
요즘으로 치자면 트랜스포머와 다이하드, 해리포터가 동시에 개봉해서 모든 극장을 꽉 잡고 있을때 심형래 감독의 디워가 이 모든 작품들을 물리쳐 흥행참패 시키고 홀로 관객 삼천만 정도를 동원해버리는 사건과 맞먹는다고 하면 조금은 이해가 가시려나?
나이 60을 넘어서 비로소 자신만의 그림세계를 만들고 89세에 세상을 떠나기까지, 죽는 그날까지도 붓을 놓지 않고 작품을 그려냈던 진정한 화가가 바로 겸재 정선이다.
많은 이들이 겸재의 '진경산수'를 '실경산수'와 착각하곤 하는데, 실경산수가 마치 사진을 찍듯 있는 그대로를 묘사하는 것이라면 진경산수는 실제 그 대상이 되는 장소를 누비고 난후 종합적인 감상을 화면에 구현해내는 방식을 말한다.
당연히 후자쪽이 훨씬 함축적이고 감성적이며 설득력을 갖게 된다.
이런 진경산수의 창시자인 겸재의 최고걸작중의 하나인 인왕재색도는 서울 출생인 겸재가 인왕산의 느낌을 힘찬 필치로 그대로 담아낸 걸작으로, 보고 있으면 그 호쾌한 필력에 절로 가슴이 뻥~뚫려버리게 된다.
고맙게도 지금 이사와 있는 내 작업실은 겸재가 이 인왕재색도를 그릴때 염두에 두었던 앵글과 완벽하게 일치하는 곳이다.
겸재의 인왕재색도가 비가 내린후 안개가 그윽하게 깔린 인왕산의 아름다움을 그린 것 처럼 밤새 비가 내린 후 반짝 하늘이 맑아진 새벽에 보는 인왕산의 모습은 더없이 아름답다.
250년전의 겸재와 같은 풍경을 보며 같은 감상에 젖을 수 있다는 것은 얼마나 행복한 일인가!
서울생활 십수년만에 서울에 있음을 감사하게 생각하게 되는 아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