괴물은 이미 개봉 전부터 대박이 예상되던 작품이다. 봉준호 감독...참 영악한 것이 지 하고 싶은 이야기를 하면서도 흥행이 되기위해서는 어떤 요소들이 필요할지를 기막히게 계산해 놓았다는 것이 대단하다. 연출력이니 뭐니 감독을 띄우기위한 말들이 많지만(마치 박찬욱이 일약 스타감독이 된 것 처럼...) 내가 가장 좋게 본 것은 어설프게 인디영화 감독들 처럼 지 하고 싶은 이야기만 주절대지도 않고, 쌈마이 상업영화 감독들 처럼 여기저기 찔러보느라 영화를 말아 먹지도 않고, 말로만 대가인 감독들 처럼 어디에 어떤 효과를 써야할지를 몰라서 제작비를 쏠랑쏠랑 다 까먹는 짓을 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괴물은 충분한 스토리 텔링에 적절한 특수효과와 돈을 발라서 매끄러운 장르영화 하나를 온전하게 만들어 냈다는 점에서 박수를 치고 싶은 영화이다.
놀랍게도 괴물은 가족영화의 틀안에서 만들어졌다. 누구나 이런 기획을 하기는 쉽지만 이런 시나리오가 받아들여 졌다는 사실 그 자체가 한국영화계에서는 이변이다. 살인의 추억의 봉준호였기에 아마도 가능한 일이었겠지만 한강에 괴물이 출몰한다는 시놉시스를 만일 내가 영화사에 가지고 간다면 단 5초도 안되어 내 시놉시스가 으리으리한 영화기획사 실장방의 휴지통으로 직행하는 것을 내눈으로 보게 될 것이다.
언제부터인가 한국 영화의 전형처럼 된 심각한 주제와 스토리상에 양념으로 곁들여지는 유머는 괴물에선 상당한 빛을 발한다. 다만 그 유머가 관객대부분을 동시에 웃기는 보편타당한 유머가 아니라는 것이 다소 아쉽긴 하지만... 개인적으로 송강호의 캐릭터는 그에게 아주 잘 맞는 옷이지만 자꾸만 살인의 추억과 넘버3의 캐릭터가 겹쳐지는 것은 그에겐 심각한 부작용이다. 아버지 역할로 좀 덜 알려진 연기자를 썼다면 어땠을까 하는 개인적인 아쉬움이 남지만, 역시 흥행을 위해서는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을듯.
배두나는 오래전부터 주목하고 있는 배우다. 등에 멘 양궁 장비가방 때문에, 특유의 느릿느릿한 행동때문에 거북이로 불리지만 마지막에 회심의 한방을 통쾌하게 날려주는 배두나는 크림소스 스파게티같은 느끼한 헐리웃 히로인들과는 차원이 다른 매력을 발산한다. 교각 트러스의 배선용 구멍에서 자다 일어나는 장면은 너무 좋아~~ 훌륭한 설정, 훌륭한 디테일이다.
아울러 이 영화 최고의 캐스팅인 변희봉 아저씨... 이 양반의 젊은 시절 모습도 기억이 선한데 어느새 이렇게 인생의 맛이 철철 넘치는 멋진 얼굴로 변하셨는지... 이 양반의 눈빛 연기가 영화감상평에 회자되고 있지만, 눈빛 뿐만이 아니라 둔치를 가로지르며 "한방 지대로 멕여주마!"라며 어깨를 으쓱거리는 모습에서는 아주 소름이 쫙 끼칠 정도다.
그리고 박해일... 연기도 제법 잘하고 얼굴도 다양한 표정이 나오는 것 같아 좋은 배우인 것 같긴 하지만 개인적으로는 아직까진 딱 이거다 싶은 연기모습을 발견하지 못해 평가를 유보중인 배우다. 다만 괴물에서 운동권 출신 백수로 등장하는 캐릭터에 대해서는 상당한 공감을 하지 않을 수 없다. 특히 택시안에서 꽃병을 만드는 장면은 아련한(?) 옛 기억을 되살려 주었고 교각 밑에서 양손타법으로 꽃병 두개 잡고 천에 불먹여 휘~휘 돌리며 슬금슬금 앞으로 나아가서는 휘떡~ 하고 던져주는 장면은 정말 제대로다. 뭐니뭐니 해도 최고의 압권인 '민주열사 꽃병 투척 3호 자세'로 간지 제대로 던져주시다 살포시 삑사리 나는 장면과 이어지는 대사 "에이~씨발~"은 현장에서 꽃병 던져본 사람이라면 누구라도 공감할 명장면이 아닐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