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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era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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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청'에 해당되는 글 6건

  1. 2008.08.14
    대한민국이 고작 60년짜리 나라인가!
  2. 2008.06.30
    이명박, 넌 이제 끝났어! 15
  3. 2008.06.29
    전대협 진군. 10
  4. 2008.06.11
    명박산성에서 자유를 외치다! 5
  5. 2008.06.01
    분노의 5월이 지나면 승리의 6월이 온다! 11
  6. 2007.01.27
    당신은 태극기와 애국가와 함께 운적이 있나요? 12
미친소 수입으로 뻘짓을 하더니 급기야 친일파 매국노 집단이라는 것을 노골적으로 드러내는 명바귀의 야욕에 분노하지 않을 수 없다.
대한민국의 헌법에는 '대한민국은 상해 임시정부의 정통성을 계승한다'는 내용으로 일제에 대한 항일투쟁 기간을 이 나라의 역사로 인정하고 있다.
건국60주년이라며 '건국절'을 추진하고 있는 명바귀와 한나라당, 뉴라이트 연합은 그 태생적인 뿌리가 친일파에 있는 관계로 항일 독립투쟁을 대한민국의 역사속에서 지워내고 싶은 것이다.
참, 지랄하는 방법도 가지가지다!

누가뭐래도 올해는 단기 4341년, 광복 63주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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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는 7월 4일,
시청광장에서는 이명박 정권의 폭거에 항거하는 의미를 담은 대법회가 예정되어 있다.
대한민국 천주교 역사상 가장 위대하고 아름다운 미사가 봉헌된 오늘,
사제단은 오늘부터 시청광장에 천막을 치고 단식농성을 하시겠다고 발표했다.
자연스럽게 오는 4일 법회는 천주교회와 불교계가 함께하는 자리가 될 것이고,
만에 하나라도 너희가 이를 탄압할 경우,

전설같은 불무도로 무장한 호국승려들과 성령으로 무장한 성당기사단의 강력한 어택을 받게 될 것이다!!!

이명박의 죽음에 애도를 표하며...

아멘~

아미타불~~

Ps. 오늘은 간만에 두다리 쭉뻗고 편히 잘 수 있을 것같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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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 원래 모든 일은 그렇게 되지.
28일, 시청에 전대협 깃발이 든다는 글을 본뒤 30~40대의 참여를 독려하기 위해 포스터를 만들고 글을 띄웠지.
막상 시청에 2시에 가보니 깃발아래에 있던 인원은 고작 20~30명.
그분들 중에 진짜 시위를 경험해봤던 분들도 많지 않고.
대부분 그동안 울분만 가지고 있다가 80~90년대의 상징과도 같은 '전대협 깃발' 아래에 모인 분들이었다.

목소리가 커서, 집회시위 경험때문에, 아직도 당시의 노래들과 구호 치는 법, 아지 띄우는 법, 대열 진행법을 알고있다는 이유로 대열 리딩에 나설 수 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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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들 안그럴 것인가?
이런말이 있었다.
공권력에 의한 폭력이 투사를 만들고,
결국 피를 불러 열사를 만들며,
결국 그 권력은 망하고 만다고.

그동안 거리에서 본 수많은 촛불소녀들은 이미 모두 투사가 되어 있다.
돌을 들거나 폭력을 행사하진 않지만 그들은 이미 자신이 할 수 있는 방법으로 투사의 역할을 하고 있다.
입맛을 바꿔서라도 삼양라면을 먹고 부모를 설득해서 조중동을 버리게 만들며 관심이 없던 친구들을 설득해 '조직해 내고'있다.
그게 바로 투사다.

현재 전대협은 유령과도 같다.
더이상 그 실체는 존재하지도 않고,
과거 전대협 간부들의 일부는 완전히 변절하여 기성 정치권에 몸담고 있다.
그러나 과거 전대협은 투사들의 상징이었고,
해묵은 깃발이 2008년의 시청에 다시 세워진 것은 시대를 역행하려는 이 정부와 공권력에 대한 강력한 경고 메시지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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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청에서 청계방향으로 진출해 펼친 선전전.
당초 30여명으로 시작한 이 대오는 곧 200여명으로 불어나게 된다.
간만에 실컷 뛰어 봤다.
일단 택이 잡히면 속전속결이 본디 전대협의 투쟁방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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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국동에서의 대치. 갑작스럽게 등장한 전대협 깃발에 경찰이 놀랐는지 소화기와 방패를 써서 무작정 진압에 들어왔다.
유모차 아저씨가 소화기를 맞았고 방패에 떠밀린 아저씨 한분이 아스팔트 바닥에 머리를 부딛치며 뇌진탕을 일으켜 발작했다.
내가 직접 119를 불러 후송되는 것 까지를 도왔는데, 상태가 너무 심각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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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그날이 왔습니다.
100만인이 모이기로 한 날.
21년전의 그 함성과 감동을 다시 느끼기로 한 그날입니다.
그러나 아침부터 터져나온 뉴스는 제 눈과 귀를 의심케 합니다.
마치 전쟁중에나 볼 것 같은, 탱크의 전진을 막는 '대전차 장애물'과도 같은 거대한 컨테이너 덩어리는 애써 냉정을 되찾으려 노력하는 제 가슴에 불을 당깁니다.
6시30분, 저는 그 흉물앞에 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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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센스쟁이 국민들은 이 흉물에 '명박산성'이라는 기가막힌 작명을 선물합니다.
입가에 희미하게 미소가 번집니다.
산성의 옆으로 돌아서자 이 비현실적인 대비가 눈에 들어옵니다.
칙칙하고 냉전적이며 구시대적 발상의 상징인 이 장벽의 저편엔 2000년대의 성숙한 시민사회가 펼쳐져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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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도착했을때는 젊은 미술인들이 장벽에 그림을 그려넣고 있었습니다.
그렇지 않아도 집에서 나오며 '저 흉물에 실컷 그림이나 그리면 좋겠다'라고 생각을 했었는데, 역시 그림쟁이들의 생각은 비슷한가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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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저 그림을 그리던 분들에게 동의를 구한뒤 저도 남은 스프레이로 한구석에 신나게 그래피티 한점을 남깁니다.
사진에는 안나오지만,
'박정희는 5.16
전두환은 5.18
명바기는 전쟁이냐?'
라는 글과 해골을 동반한 '광우병 시러!'라는 글을 그려넣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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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시민들의 훌륭한 '예술작품' 몇점을 감상해 봅니다.
'여러분 재미있습니까? 저는 울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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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우병 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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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박을 넣어 미쿡에 사는 부시에게 수출하겠다는 내용의 Packing List를 작성해 붙이던 아저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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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곳은 국경선입니다. 여기부터는 미국의 코리아주입니다. USA 코리아 주지사 이명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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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은 우리의 목소리를 듣기 싫고, 우리가 무섭고, 우리가 겁이라도 먹으라고 저 흉물을 세웠지만 우리는 결코 겁먹지 않습니다.
이순신 장군님께서 굽어보시는 가운데 당당하게 인증샷을 날리는 가운데의 웃는 청년처럼...
오늘은 진정 국민승리의 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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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면 이리도 닮았을까?
시대를 역행하는 이 장면에 끓어오르는 피를 억누르기 힘들다.
본능적으로 위기를 직감하고 공포에 질린 시민의 얼굴과 절규하며 이를 항의하는 시민.
그러나 아랑곳 하지 않고 곤봉을 내리쳐 머리를 가격하는 경찰의 모습에서는 일말의 망설임도 없다.

분노의 5월은 결국 피를 부르며 끝이 났다.
그러나 역사는 돌고 도는 법이라고 그랬듯이, 80년의 5월과도 같은 피의 오월이 지나고 나면 우리에게 오는 것은 승리의 6월이다.
1987년에 노도와 같은 국민들의 대저항이 일어났듯이, 오늘 새벽에 정부와 공권력이 보여준 시민에 대한 대응은 마침내 국민봉기를 이끌어내고 말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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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리에서 피를 철철 흘리면서도 간호사 언니를 바라보는 이 어린 소녀의 눈빛에는 절망과 공포보다는 당당함이 짙게 배어난다.
행여라도 울지말거라.
이젠 우리가 너를 지켜줄께.
마침내 피를 봐야한다면 이미 십수년 전에 충분히 맞을 만큼 맞아봤고, 싸울만큼 싸워봤던 우리가 대신 맞아줄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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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수차의 직격을 몸으로 받아내는 대학생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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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리에 부상을 당한 예비군 부대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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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찰의 강제진압에 거리에서 실신한 여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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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찰의 진압작전중 집단 구타를 당한뒤 정신을 잃은 청년을 숨기기 위해 포위하고 있는 경찰들.

마침내 6월이다.
6월엔 시청광장의 아스팔트가 다 녹아 없어지더라도 결국 우리가 승리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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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그런지는 모르겠지만, 어젯밤에 가볍게 술 한잔하면서 쓰라리게 기억들이 떠올랐습니다.
60~70년대생들에게는 군부독재 정권하에서 맹목적인 애국심 강요에 대한 반발심으로 잘 부르지도 않았고, 국기에 대한 경례는 살벌한 분위기의 아침조회에서 군대라도 들어간 것 처럼 치러내야 했던 기억들 때문에 태극기와 애국가는 한동안 큰 의미를 가지지 못하는 그저 한 나라의 상징이라고 생각한 적이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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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학창시절 목격한 6월항쟁은 태극기에 대한 제 생각을 완전히 바꿔놓은 중요한 계기였습니다.
매일 저녁 5시 30분이 되면 국기 하강식이 거행되며 길거리에서도 사람들이 가던 길을 멈추고 애국가와 함께 국기를 찾아 경례를 해야했던 시절... 그것은 지극히 당연한 일상이었고 조금은 귀찮기도 한 것이었지만 1987년 6월의 그것은 좀 달랐습니다.
여전히 곳곳의 스피커를 통해 울려퍼지는 애국가와 펄럭이는 태극기는 여전했지만, 바로 그 5시 30분 국기 하강식에 맞춰 골목골목, 건물마다, 길을 가던 행인들이 일제히 차도로 뛰쳐나가 도심을 메워버리고 불렀던 애국가는 지루하고 따분한 애국가가 아닌 가슴을 망치로 두드리는 듯한 벅찬 느낌이었습니다.

부모님께는 숨겼지만, 저 역시 종종 그 대열에 합류해 함께 "호헌철폐, 독재타도!"를 외쳤고, 나중에 알았지만 당시 사업을 하시던 아버지도 매일 5시 30이 되면 가게 문을 닫고 대전역 광장에서 구호를 외치고 계셨다고 하더군요.
그리고 최루탄 직사에 두개골 함몰상을 당해 즉사한 고 이한열씨의 사진은 저뿐만이 아닌 수많은 사람들의 의식과 미래를 바꿔놓게 되었습니다.
제가 기억하는 1987년, 그때 불렀던 애국가는... 불꽃처럼 타오르는 분노의 눈물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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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0년 광주, 당시 전 초등학생이었습니다.
어렸지만 지금도 생생히 기억나는 것은 그날 아침, 조회에 들어오신 선생님이 "나라에 큰 일이 났다."라고 말씀하시던 얼굴입니다.
남자선생님이었는데도 불구하고 눈가에 눈물자국을 지우지도 못한채 들어오셔서 떨리는 목소리로 말씀하시던 그 일이 5.18이라는 것은 훨씬 뒤에 알게 됩니다.
대학에 다니며 소위 '교재'로 불리던 조악한 화질의 광주 동영상을 보게 되었습니다.
국내방송들의 영상이 아닌 외신기자, 외국 민간인들이 촬영한 영상의 모음이었던 그 테이프는 훗날 다양한 다큐프로에 자료로 쓰여 이젠 널리 알려진 것이지만, 당시 제가 본 것은 방송용으로 시신을 모자이크 처리하거나 너무나 참혹해 공중파 방송에서는 삭제된 분량까지 고스란히 담겨 있는 원본영상이었습니다.
차량시위대의 행렬 맨 앞의 버스 위에서 상의를 벗어 던진채 태극기를 흔들며 애국가를 부르던 한 청년... 결국 그분은 곧이어 이어진 발포로 인해 절명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길바닥에 널부러져있던 수많은 시신들은 시민들의 손에 의해 리어카에 옮겨지고 겨우 태극기 한장이 씌워질 뿐입니다.
시신의 피가 배어 붉게 변한 태극기, 그리고 거리에서, 버스위에서, 마지막 밤 도청안에서 울먹거리며 불렀던 애국가...
1980년 5월의 태극기는 잔인하게 붉은 핏빛이고 애국가는 처연한 슬픔이었습니다.

1991년 여름, 전 시청앞 로터리(현재의 시청광장)에 있었습니다.
남대문 시장을 등진채 시야에 들어오는 모든 길과 골목이 전경대의 제복과 방패로 인해 검은색으로 물들어 있는, 지독히 비현실적인 풍경이었습니다.
천지를 울리는 듯한 일제발사음이 사방에서 들려오고 뒤이어 비행궤적을 따라 흰꼬리를 그리며 눈앞으로 날아드는 지랄탄...
귓볼을 스쳐 지나간 지랄탄이 제 뒤에 있던 순대행상 아주머니의 순대삶는 솥을 뒤엎어 놓는 순간 숨이 콱 막혀오며 그대로 길바닥에 무릎을 꿇을 수 밖에 없었습니다.
앞이 전혀 보이지 않고 질식해버릴 정도로 엄청난 양의 최루가스속에서 아득하게 의식이 멀어질 즈음, 전 봤습니다.
오른쪽으로 보이는 높은 건물의 창가에서 회사원으로 보이는 한 아저씨가 던져서 펄럭이며 내려오는 한장의 태극기...
그 태극기로 인해 정신을 가다듬을 수 있었습니다.
1991년 여름, 최루가스 속에서 눈물 콧물을 쏟아가던 가운데 목격한 그 태극기는 '희망'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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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년, 다시 돌아온 시청은 10년전의 기억을 고스란히 떠올리게 만들었습니다.
도로를 메운 젊은이들, 함성, 그리고 태극기와 애국가...
붉은악마가 상암구장에서 해치워버린 거대한 태극기 퍼포먼스는 가슴떨리는 진한 감동이었습니다.
특히 개인적으로 가장 절절하게 와닿았던 것은 선두에서 응원을 리딩하는 분들이 온몸을 쥐어짜듯 토해내던 사전구호인 "자랑스런 나의 조국~ 대~한.민.국!" 입니다.
전 지금도 그 목소리와 모습을 떠올리면 온몸이 찌릿해집니다.
2002년과 2006년, 붉은물결 속의 태극기와 애국가는 짜릿한 전률로 흘리는 눈물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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